이 우주는 왜 가능한 모습인가
(연재: 우주의 존재 이유 ― 물리학 이론 탐구 / 3편)
앞선 두 글에서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시작이 에너지의 관점에서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 이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 바로 이것이다. 왜 물리 법칙과 여러 상수들은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며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결국 생명체가 등장할 수 있는 값을 가지고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존재 자체를 질문할 수 있는 이런 우주 안에 놓여 있는 것일까?
현대 물리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주목해 온 사실 하나가 있다. 우주를 지배하는 여러 물리 상수들이 놀랄 만큼 정교한 값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력의 세기 전자기력의 강도 입자의 질량과 전하 같은 값이 아주 조금만 달랐어도 별과 은하 안정적인 물질 구조 그리고 생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계산 결과들이 반복해서 제시되어 왔다. 이 문제를 물리학에서는 '미세 조정 문제'(fine-tuning problem)라고 부른다.
이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므로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만약 중력이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강했다면 우주의 물질은 너무 빠르게 서로를 끌어당겨 별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빛날 시간도 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반대로 중력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물질은 서로 뭉치지 못해 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별이 없었다면 복잡한 화학 반응 그리고 생명으로 이어지는 환경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세 조정 문제란 바로 이런 경계 위에 지금의 우주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실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왜 하필 이 값들일까"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현대 이론 물리학은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다. 그중 하나가 '다중우주'(multiverse)라는 개념이다. '다중우주'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물리 법칙과 상수를 가진 우주들이 매우 많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개념은 단순한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특정 이론들이 자연스럽게 예측하는 결과로 등장했다. 특히 '끈 이론'(string theory)은 우주가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상태의 경우의 수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많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우주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우주에서는 중력이 너무 강하거나 약해서 별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입자들이 안정적인 구조를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가능한 경우의 수가 충분히 많다면 그중 일부에서는 지금 우리가 관측하는 것과 같은 조건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 생각과 연결되는 개념이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이 원리는 우리가 이런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단서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이 설명은 우주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주장과도 단순한 우연이라는 주장과도 다르다. '다중우주'와 '인류 원리'는 우주의 성질을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확률과 조건의 문제로 바라본다. 우리는 특별한 우주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가 가능한 우주 안에 있기 때문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우주가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물리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오랫동안 우주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는 정체 불명의 힘에 의해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고 알려져 왔다. 이 힘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우주는 계속 팽창하며 점점 더 차갑고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의 관측 결과는 이 그림에 조심스러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암흑 에너지'의 성질이 시간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만약 이 힘이 점점 약해진다면 우주의 미래는 지금까지 예상해 온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우주는 이미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우주의 시작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 역시 하나의 고정된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우주는 존재하는가. 이 연재에서 살펴본 현대 물리학의 답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우주는 어떤 의도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 법칙이 허용하는 조건과 가능성 속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무는 안정되지 않았고 에너지는 균형을 이루었으며 물질과 구조는 남을 수 있는 조건을 얻었다.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로 실현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존재는 신비로운 기적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귀결에 가깝다. 우리는 특별히 선택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조건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리학은 아직 모든 답을 알고 있지 않다. '다중우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암흑 에너지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하나다. 왜 우주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사유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연재의 결론은 단정적인 해답이 아니라 하나의 시야다. 현대 물리학은 존재를 설명 불가능한 사건이나 목적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존재는 무보다 더 유지되기 쉬운 상태였고 가능한 조건이 갖추어졌기에 실현된 결과였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 우주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설명의 일부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 신난일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