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사태에 동일한 단어가 사용될 때, 심각한 철학적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인간이 꽃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고 인공지능도 꽃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 이 두 문장은 동일한 형식을 가진다. 그러나 이 문장이 표현하는 구체적 현실은 매우 다를 수 있다. 동일한 단어의 사용은 따라서 실제로는 동일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일한 종류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꽃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적 기호가 활성화되는 일이 아니다. ‘꽃’이라는 단어는 기억과 감각 그리고 감정과 개인의 역사와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은 봄의 향기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장례식의 기억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꽃을 받았던 기쁨이나 특정한 장소의 이미지를 환기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꽃에 대한 사유는 흔히 살아 있는 '세계의 일부'를 이룬다. 그것은 신체화된 경험과 개인의 내적 역사에 속한다.
반면 인공지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꽃’이라는 단어는 데이터와 패턴 그리고 연관성과 계산 구조를 통해 처리된다. 인공지능은 꽃을 매우 잘 설명할 수도 있고 정확하게 분류할 수도 있으며 감동적인 언어를 생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직 이것만으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의미에서 꽃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외적으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내적으로 동일한 행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는 '공감'의 문제를 제기할 때 더욱 중요해진다. 인간의 공감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이 경험에 부여한 의미 속으로 적어도 부분적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꽃을 슬픔이나 사랑과 함께 말할 때 다른 사람은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기억과 감정 그리고 상실과 희망의 세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삶의 공통된 구조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도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꽃에 대한 사유가 살아 있는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반면 인공지능의 과정이 계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언어의 동일성은 현실의 깊은 차이를 가릴 수 있다. 이 경우 우리가 공유된 이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표현의 유사성에 불과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공감과 유사한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이러한 언어적 유사성이 온전한 의미에서 공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있다.
따라서 핵심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에 있지 않다. 더 깊은 문제는 동일한 단어의 사용이 동일한 의미와 동일한 경험 그리고 동일한 종류의 사유를 전제할 수 있는가에 있다. 공통의 어휘는 하나의 다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차이를 은폐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개념적으로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모두 "꽃을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적으로는 허용될 수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두 사건을 가리킬 수 있다. 공감의 문제는 바로 이 구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